나에게 서재는 다이달로스 작업장 같은 곳
나에게 서재는 그리스 신화에 비유하자면 ‘다이달로스’라는 기술자가 있는데 다이달로스의 작업장과 같은 곳입니다. 왜냐하면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이름있는 영역본이나 독역본 등을 한 4~5가지 이상 참고해야 되고 또 주석도 봐야 됩니다. 그걸 전부 참고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우리말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.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를 번역하는 것을 일종의 작업에 비유한 것입니다.
책과 나의 이야기
‘고전만 읽어라.’ 이렇게 하면 좀 문제가 있겠지만, 고전을 먼저 읽고 전공서적이나 또는 취미 생활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. 고전은 수백 년 또는 그리스의 경우에는 2천 년 이상 읽히고 인정받아 온 그런 작품들이거든요. 그런 저술들이기 때문에 그걸 먼저 읽고 나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겠구나. 또는 책은 또 어떤 걸 읽는 게 좋겠구나. 저절로 깨우친다 그럴까요.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독서를 할 때는 고전을 먼저 하고 나서 다른 전공서적이나 교양서적 등을 읽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.

제가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교 2학년 때 장익봉 교수라고 있었습니다. 옛날에. 우리 세대는 알죠. 그분한테서 플라톤의 <향연> 그걸 그리스어 텍스트로 읽었어요. 학생 한 서른 명하고 장익봉 교수하고 함께 읽었는데, 그때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왜 이런 책들이 좀 많이 우리나라에 번역돼서 보급이 안 될까. 이런 생각도 해봤고. 또 독일 가서도 그리스 공부를 꾸준히 했어요.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필두로 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, 소포클레스의 비극, 오이디푸스 왕. 이런 걸 계속 읽었는데 그때 한번 번역해보고 싶다는 그 결심, 그런 생각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늘 항상 마음에 갖고 있었죠. 그걸 실행에 옮긴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.
번역의 가치와 즐거움
번역이 하는 일이 많죠. 우리가 볼 때 일본이 그렇게 급속하게 근대화될 수 있었던 것도 번역을 통해서라고 나는 생각하거든요. 일본은 거의 새로운 전공서적이든 다른 좋은 책들은 금방 번역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. 그리고 번역을 잘해 놓은 책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. 경우에 따라서는 창작 이상으로요. 그래서 번역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. 번역은 번역대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. 그리고 번역의 즐거움이라면 처음에 그리스어 텍스트를 대하면 완전히 앞이 캄캄합니다. 영어나 독일어하고는 또 달라요. 굉장히 어렵죠. 근데 그걸 여러 가지 번역이나 주석 등으로 도움을 받아서 손질을 좀 하면 괜찮은 번역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.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. 그럴 때 어떤 희열 같은 걸 느끼죠.

원전 번역이 아닌 중역일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그 번역을 어느 누구도 100% 완전하게 번역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. 가까이 번역했다. 그렇게 생각해요. 원래의 뜻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표현해 냈다. 이렇게 생각하는데, 중역일 경우에는 그 잘못된 것, 애매한 것들이 그대로 넘어오잖아요. 우리말로. 그러니까 독자들께는 이중의 부담이 되고. 아무리 좋은 영역본, 독일어 번역이나 불어 번역이 있다 해도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제대로만 번역되면, 우리말로 된 번역이 훨씬 빨리 들어오죠.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,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표현의 아름다움도 우리말로 해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거고.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원전 번역을 해야 되고 또 원전 번역이 없는 나라하고 있는 나라하고 유럽에서도 그 문화적인 수준의 차이가 있겠죠. 플라톤 전집이 영어로는 다 돼 있죠. 독일어로도 돼 있고. 그게 다 안 된 나라도 있을 거예요. 유럽이라도. 그거는 좀 선진국이라고 하기가 어렵겠죠.
그리스 고전을 쉽게 번역한 사람으로 기억되고파
내 책, 번역서가 먼 훗날에도 읽힐지 그건 모르지만, 만일 읽힌다면 어려운 그리스 로마 고전을 쉬운 우리말로 본격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 정도로 기억되고 싶고요. 고전의 총서 중에서 하버드 대학에서 나온 ‘loeb classical library’라는 게 있습니다. 지금도 진행 중인데 2006년도인가에 500권을 돌파했습니다. 미국이 500권 갖고 있는데 우리는 100권 정도는 했으면 좋겠다.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그중에 한 30권 남짓했거든요. 그러니까 우리 후배들이 이제 그 나머지 한 60여 권을 국비지원을 받아서, 개인이 하기도 사실 어렵거든요. 우리나라 교육부에서도 조금 신경 써서 한 100권 정도의 그리스 로마 우리말 고전 번역을 완성해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이 자리를 빌려서 하고 싶습니다.

(지서재 ‘천병희 편’은 천병희 님의 자택에서 촬영했습니다.)